독일사, 맥세계싸편찬위원회 2015 느낌있는 책
I. 초기
1. 기원후 5년 로마의 게르만족 정벌 : 라인강에서 엘베강까지 = 게르마니아
2. 기원후 9년 케르스키의 족장 헤르만 (Hermann) : 토이토부르크 숲 전투에서 2만 명의 로마군 전멸, 아우구스툿 황제의 영토확장 포기
3. 395년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의 죽음 이후 로마제국의 분열
- 서로마제국은 476년 멸망 by 게르만족 | - 동로마제국은 1453년 멸망 by 오스만튀르크 |
- 서로마제국의 3분열 - 1) 프랑크 왕국 : 프랑스지역 + 독일 2) 서고트 왕국 : 스페인 + 서프랑스 3) 동고트 왕국 : 이탈리아 |
II. 중기
1. 프랑크 왕국의 왕
1) '클로비스' 왕 (메로빙거 왕족)
- 486년 수아송 전투에서 로마군을 상대로 대승, 서고트 왕국의 공주 클뢰틸드와 혼인
- 500년 '해변 프랑크족' 출신 '클로비스'왕은 '강변 프랑크족'과 더불어 서고트 왕국을 정복
- 507년 '강변 프랑크족'을 흡수 합병
2) 카알제국 (카롤링거 르네상스)
- 궁재의 등장, '칼롤 마르텔' (720년경) - 소 피핀(아들)
- 소 피핀(카를링거 왕조)이 왕이 됨
- 카알(소 피핀이 아들)이 왕이 된 이후 '카롤링거 왕조'를 열었다 (771년부터 47년간).
- 800년 교황 레오 3세는 카알을 '로마의 황제'로 칭하였고 대관식을 로마에서 열어줌, 이때부터 프랑크 왕국은 '카알 제국'으로 바뀌었음.
3) 814년 카알의 사망, 843년 세 명의 손자는 '베르튕 조약'을 체결하고 삼분할
- 동프랑크왕국 = 독일
- 서프랑크왕국 = 프랑스
- 동서부 사이 = 이탈리아
2. 오토 대제
1) 10세기 동프랑크 = 작센, 슈바벤, 로렌, 프랑켄, 바이에른, 튀링겐으로 구성
2) 작센 공국의 '하인리히 1세'는 독일의 왕으로 선출
- 그의 아들 '오토' 936년 작센 공작이 되고서 국애의 반란을 제어하고 통일왕국을 건설
- '오토'는 954년 '제국회의'를 통해 심복을 공국의 요직에 임명
- 962년 (신성로마제국의 출발) 교황 요한 12세는 그에게 정치적 복권을 준 오토에게 대관식을 열어 주었고, 로아믜 수호자, 가톨릭 최고통치자, 그리고 로마인의 황제가 되도록 하였음.
- '오토 특권' 조약 : 황제는 교황을 보호하고, 교황은 황제에게 충성을, 황제가 교황을 임명.
- 963년 오토는 요한 12세를 폐위하고 리오 8세를 새로운 교황ㅇ로 선임했음.
3) 독일 역사의 3제국
- 제1제국 962 - 1806 (신성로마제국, 오토 대제 이후)
- 제2제국 1871 - 1918 (호엔촐레른)
- 제3제국 1933 - 1945 (히틀러)
3. 카놋사의 굴욕 (1077년 하인리히 4세 v. 그레고리우스 7세)
- 1076년 1월 하인리히 4세는 그레고리우스 7세를 폐위한다고 선포, 이에 그레고리우스 7세는 하인리히 4세를 파문, 하인리히 4세의 반대파인 슈바벤 공작과 바이에른 공작은 새로운 왕을 추천
- 1077년 1월 25일 하인리히 4세는 카노사 성에 도착하여 용서를 구함
- 1080년 그레고리우스 7세는 다시 한 번 파문, 하인리히 4세는 새로운 교황을 임명
- 1084년 로마 공격 후 그레고리우스 7세는 망명, 1085년 사망
- 1106년 하인리히 4세 사망
- 1122년 '보름스 종교 협약' 권력 투쟁이 잠시 일단락
4. 프리드리히 1세
-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후계자가 독일 왕에 선출된 프리드리히 1세는 '바르바로사'라는 별명
- 교황 에우제니오 3세가 구원을 요청, 프리드리히 1세가 평정, 교황 하드리아누스 4세가 뒤를 이어 황제대관식을 열어 줌
- 빈정 상한 프리드리히 1세는 대관식을 피의 축제로 만들어 버림.
- 이탈리아와 여러 번 전쟁을 하면서 마지막 전투에서 '롬바르디아 동맹'에 패하였음.
- 피의 대관식을 만든 프리드리히 1세는 교황의 발에 입맞춤.
5. 프리드리히 2세 (신부가 키운 왕)
- 15세 때 과부인 아라곤의 공주와 정략 결혼. 이후 시칠리아 왕국을 강화게 만듦.
- 독일내에서 권력 투쟁 중 프리드리히 2세는 1214년 동맹국 프랑스와 함께 독일을 정복하고 1220년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로 즉위하게 됨.
- 십자군 전쟁에 참여하여, 1225년 예수살렘 왕으로 즉위하였음.
- 교황청과 권력 쟁탈 중 사망(1250년), 하지만 교황청의 위상은 추락
6. 프리드리히 2세 이후 독일은 왕이 없거나 허울 뿐 왕 100년간 강한 통일 국가를 이루지 못함.
III. 근대 독일의 형성
1. 마르틴 루터
- 교황청의 세금(20배) > 황제의 세금
- 인신칭의론 주장 : 인간은 믿음 안에서 하느님의 용서를 받고 의인으로 인정 받는다
- 1517년 '95개조 반박문'
- 1543년 독일어 신약성서
- 입장의 변화